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서평) 스님의 공부법 – 자현

(중요한 문장)
l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흐르는 시간만 느리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집중력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궁 선수가 훈련하는 호흡법이나 명상이 필요한 것 역시 당연하다.
l  잠을 줄이고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생각에 반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많이 잘수록 공부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l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휴식이다.
l  현재의식도 중요하지만, 보다 핵심은 무의식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그래서 무의식이 해낼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라. 이것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다.
l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과 충돌해서는 안된다. 통일되어 협조가 잘 되는 상태에서도 뛰어난 상대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내면에 또 다른 반대의 나를 상정하고 자근자근 타당성을 설명하라. 이것이 반복되면 최소한 내면의 안티는 사라지고, 더 나아가 반대의 에너지들도 긍정의 에너지로 변모하게 된다. 즉 에너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방향이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l  어렸을 때는 이런 상황 때문에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러다가 떠올린 생각이 무의식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식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은 어떻게든 저장한다는 말이다. 단지 이것을 현재의식으로 끌어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l  나는 공부를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공부는 취미이지 직업은 아니다. 이것은 종합시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부나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유희이며 즐거움일 뿐이다. 이와 같은 자세가 중요하다.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평생 공부를 목적으로 한다면, 유희의 자세야말로 반드시 확립해야 하는 핵심이라고 하겠다. 즉 시험은 짜증나는 것이지만 유희는 즐거운 것이며 유희 안의 시험은 즐거운 짜증일 뿐이라는 말이다.
l  바뀌지 않는 부분은 인정하고 승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쉬운 부분부터 조금씩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l  오늘날은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면, 노년은 너무나도 길고 애달프다. 법구경의 명언처럼,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은 길고, 지친 이에게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평생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며, 자신만의 공부법을 체득해야만 하는 당위성이다.
l  그러므로, 취미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공부는 그저 유희가 될 뿐,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l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조건을 파악해서 이를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부분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자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l  그러나 내가 능력이 없다면, 기우는 인간관계란 결국 언젠가는 무너지게 마련일 뿐이다. 즉 인간관계 역시도 능력을 갖췄느냐가 끌려가지 않게 되는 관건이라는 말이다.
l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는 수단적인 공부가 아닌, 현재하고 있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을 찾을 수 있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며, 공부에 대한 만족도도 더 한층 깊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l  공부 역시 순수한 공부보다는, 자본을 바탕으로 해서 순수로까지 확대되는 공부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된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고흐도 긍정하지만, 상업미술의 혁명가인 앤디워홀을 더 좋아한다.
l  머리에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뚜렷한 방향제시만 있다면, 머리는 반드시 바뀐다. 사람들은 명상이 거창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것이 바로 명상이다.
책을 책꽂이에 꽂으면 부피도 적게 차지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장을 구입해야만 한다. 그 책장은뚜렷한 목적의식범주에 대한 구분이다. 이것만 확립되면 우리 머리 속 책의 정리는 책 스스로가 하게 된다. 즉 정리자는 현재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인 것이다.
l  공부를 할 때 연구대상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것은 가장 큰 금물이다. 존경심이 생기면 이해 안 되는 것도 억지로 이해하려는 모습을 견지하게 되고, 또 나는 안되지만 연구대상인 그 사람은 가능하다는 허구 속에 빠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 차이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대단할 것이 없다. 또 현대가 확보하고 있는 문명의 시각 폭은, 과거 위인들의 시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다.
l  그러므로 연구대상은 그것이 위인이 아니라 성인일지라도, 친구와 같은 인식이 있어야만 한다. 친구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잘 이해가 안 되면 왜 그렇지라고 물을 수 있는 구조가 확립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부가 발전하고 자유로워지게 된다.
l  다른 사람이 나보다 우수해 보이는 것은, 의외로 그 사람의 경기 방식에 내가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l  공부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타자화시키며 서두르지 않는 것, 이렇게 되면 어려움은 스스로 사라지며 가장 바른 길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l  붓다는 법사의에서 의법불의인이라는 가르침을 설하였다.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다.
l  동양학은 기억상실증 환자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것과 같은 것을 진정한 공부로 보았다.
l  나는 큰 손해가 없다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도전의 실패가 때론 아픔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일을 위한 더욱 거대한 성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l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나와 나의 약속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대장정의 공산당처럼, 사소한 반복으로 신뢰를 두텁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나는 하루에 무조건 3번은 이를 닦는다거나, ‘하루 50페이지는 책을 읽겠다와 같은 어렵지 않은 약속을 한다.
l  나는 비슷한 책을 여러 가지를 보지, 같은 책을 여러 본 볼 것을 권하지 않는다.
l  이는 정보의 다양성과 무의식이 받아들이는 양과 관련된다. 물론 현재의식 역시, 새로운 책을 대했을 때 훨씬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분야의 책 읽기든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감상평)
이 책은 동양철학, 미술사학, 철학, 역사교육학으로 각기 다른 4개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자현 스님의 공부법이다. 공부의 신이니 뭐니 하는 애들이 떠드는 천재들의 학습법이 아니라, 스님 본인 표현에 의하면 중학교 때 성적표에 가도 있었던 사람이 공부로 나름 성공한 얘기니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따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책을 펼쳐보았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힌 바처럼 잘난 척을 최대한 자제하고 나름 깨달은 효율적인 학습법과 공부가 갖는 의미를 담담하게 기술한 글들이라 읽기에 편했고 내가 적용할 부분도 많아 보였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점들은
1.     일단 공부에서는 무의식이 중요하므로, 책을 한 번 읽고 내용을 잃어버렸다고 자책하지 말고 관련된 다른 책들을 폭 넓게 읽어라. 어느 정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쌓이면 지식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 저자는 이를 무의식의 힘을 빌린다 라고 표현했다.
2.     의무감이 아니라 호기심이 공부의 주된 motivation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공부가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3.     어떤 책을 읽던 너무 저자의 관점에 깊이 빠지지 마라. 저자를 우상시하면 비판적인 자기 관점을 잃게 되고 그러면 저자의 도그마에 내가 빠져버린다.
4.     실용적인 관점을 주가 되게 하라. 평생 그림 한 장 밖에 못 판 고흐보다는 생전에 부와 명성을 누린 앤디워홀이 되라.
5.     비록 분량이 작더라도 매일 꾸준히 쉬지 않고 하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

많은 부분 내가 알고 있던 사항들과도 겹치고, 어떤 부분은 아무 논리적 근거도 없이 그냥 해보니까 이렇더라 라는 식의 주장이 많은 것도 사실이나, 그래도 경험 많은 선배의 충고 정도로 생각하니 큰 부담은 없었다. 특히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인 저자의 관점에 매몰되는 것에 대한 경계는 내가 깊이 새겨야 할 충고임에는 틀림없다. 꾸준히 자신을 개발하고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는 공부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는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추천한다.

(서평)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가 헬 조선이다. 그 외로는 흙수저, 노오력 등의 말들이 있다.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을 썼다가, 잠시의 호평에 이어, 왜 청춘만 아파야 하는가 안 아프면 안 되는 거냐? 아픈데 어쩌 라구? 등의 젊은 세대로부터 반발과 혹평의 역풍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 만큼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나드는 암울한 현실에서 기존의 기성세대가 하는 말은 충고도 위로도 다 소용 없는 부질 없는 짓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안정된 직장에 편하게 안주한 대학교수가 하는 공감이 진실된 공감일 리 없고, 일자리 주는 것도 아닌 성공한 사회 지도층이 하는 충고 질이 가슴에 와 닿을 리는 더더욱 없다.
이런 한국의 상황에 잘 맞는 소설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저자는 제목 빨로 흥행에 성공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지만,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잘 긁어 주는 감각도 결국은 재능 아닌가. 기자 출신인 작가가 호주로 이민에 성공한 젊은 세대 둘을 인터뷰하고 거기에 소설적인 허구를 덧입혀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젊은 평범한 4년제 대졸 여성인 계나 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암담하고 답답한 한국의 현재와 환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쪽 방에서 잠자고 접시 닦기 하면서 맨몸으로 부딪힌 해외 이민의 현실을 절절하게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잘 표현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영혼 없는 사무직을 때려 치우고 비록 몸으로 부딪히는 일을 할지언정 왜 호주 여야만 했는지는 주인공의 체험과 객관적으로 본 한국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과정을 쫓다 보면 독자도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이 묘사한 한국은
가까이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공간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담장 안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경쟁과 투쟁, 각박함으로 물들여진 세계임에도 경쟁의 공정성 마저 사라져출생에서부터 나뉜 흙 수저 금 수저 계급을 벗어날 수 없는 암담한 사회인 대한민국. 주인공의 재기 발랄한 작은 투쟁의 해답이 결국 이민이었다는 점에 나 역시 깊이 공감하면서도 씁쓸함을 금하기 어려웠다.

(서평) 지리학이란 무엇인가? – 하름 데 블레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관점에 따라 학문을 구분하기도 한다. 우선 시간의 순서대로 변화하는 흐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역사, 인간 의식주의 생산, 소비와 돈의 흐름을 다루는 경제, 인간간의 권력 소유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정치. 그러나 세상을 공간적인 구분으로 각 지역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루는 지리학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 학력고사 이 후에는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이렇게 관심 갖지 않았던, 지리라는 관점으로 세상의 모습을 상세하게 드러낸다. 시각이 참신해서 그런지 이 책으로 인해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공간을 다루는 지리학은 시간을 다루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다층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제, 역사, 문화, 사회, 지질학, 생물학등 공간 속에서 파악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모습은 다양한 각도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전세계에 다양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삶을 꾸려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왜 지리학에서 이런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필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각 지역의 고유성을 파악하는 일은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무역 중심 국가로써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 책에는 지리학 지식의 부재로 인해 겪어야 했던 값 비싼 실패의 교훈들도 나와있다.
미국이 월남전과 아프간 주둔,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결국 높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도 성공할 수 없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단순한 자연 재해로 알려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깊이 들여다 보면 후쿠시마는 환태평양 불의 고리라 불리는 맨틀의 교차층에 자리한 곳인데, 거기에 원전을 짓고 안전 장치 점검이 미흡했던 점은 지식의 부재로 인한 인재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리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한 장의 지도를 볼 때 한 장의 글을 읽는 것처럼 차근차근히 읽어 보라는 저자의 당부를 끝으로 글을 맺는다.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서평) 김훈 – 강산 무진.

강산무진은 김훈의 단편 작품집이다.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도 된 적 있는 화장이라는 단편도 담겨있다. 대부분의 주인공이 50대의 남자로 김훈 자신이 50대 때 집필해서 그런지 비슷한 연배의 주인공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본인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 관점을 잡기가 수월할 테니 말이다.
이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 후 베이비 붐 세대로서(대부분 50년대 생) 경제 발전의 주역을 담당 했으나, 이제는 어떤 조직으로든 퇴직을 해서 떠나야 하고, 떠난 후에는 갑자기 세상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나 앉는 사람들의 쓸쓸한 일상을 잘 드러낸다. 또한 힘겨운 부모 부양에, 자식들로부터 집요한 재산 상속의 요구 속에 낀 체 자신의 노후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도 잘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중년의 사랑과 성에 관한 서술이 상당히 흥미롭다. 대부분 사회의 시선과 책임감에 가려 이들의 사랑은 잘 다루어지지 않거나 불륜의 색깔을 입힌 질 낮은 흥미꺼리 정도로 취급되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중년의 삶에도 사랑과 성이 청년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거듭 드러난다. 나 역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인 만큼 이 부분에서 많이 공감하며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아직 정신적 활동이야 전혀 무리가 없지만, 나 역시 육체적으로 확실히 1-2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무럭무럭 커 나가는 아이들과 노인이 되어 버린 부모님을 보면서 양 세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힘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다시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유년기나 청년기에는 가져보지 못한 현명함과 경제적 여유가 있고, 노인에게는 없는 가능성과 체력이 아직 남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중년이라는 시기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야말로 서글픈 상념을 극복하고 활기찬 에너지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문학은 이렇게 나의 경험의 폭을 타자와의 경험을 통해 폭 넓게 확장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작가들의 섬세하고 예리한 인간에 대한 통찰 때문에 가능하다. 문학을 통해 더욱 나이에 걸 맞는 원숙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심을 해본다

2016년 2월 3일 수요일

서평. 라면을 끓이며 – 김훈.

김훈의 글은 소설도 물론 좋지만, 에세이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왜 안그렇겠는가. 아직도 고집스럽게 연필과 지우개로, 본인 표현을 빌자면,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면서 쓰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자와 행 사이에 진지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제목만큼 그렇게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작가의 글은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드러낸다. 그의 글을 보면 특히 그렇다. 매사 삶을 진지하게 대하며 살아가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만이 그에 걸 맞는 글을 뽑아 낼 수 있다. 자업자득이란 세상의 이치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물론 화려한 글재주로 잠깐 본인의 빈약하고 천박한 생각을 잘 포장해 아주 잠깐 인정을 받을 수는 있으나, 대부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김훈의 글은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자주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 많은 글들이 좋지만, 같은 남자로써 깊이 공감하는 몇 개의 글을 고르라면, 밥벌이의 지겨움, 1,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을 들겠다. 밥벌이의 지겨움, 1은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족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등에 지고, 뒤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가장의 숙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은 대부분 소외된 노동이다. 자본론의 정의를 빌자면 내가 만들어서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르고, 내가 만든 것의 얼마만큼을 가져가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늘 버거운 결과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압박 받으며 노동을 짜내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물러설 수 없는 답답함과 지겨운 현실을 어찌도 이렇게 잘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는 대부분의 잘 나가는 고위 지도층 기득권 층 자식들은 다들 면제를 받는데, 본인은 꽉 채워서 군대를 가야 하는 아들의 푸념과 불만을 마주한 서민 아버지로써의 무기력, 분노를 아주 잘 드러냈다. 나는 외국 은행에서 18년간 근무하면 그 안에서 지금 말하면 금 수저들을 많이 봤는데, 어쩌면 그렇게 덩치 좋고 하루에 서너 번씩 고급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죄다 면제 인지 깜짝 놀랐다. 왜 안그렇겠는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회의 때 국방부 장관 빼고는 다 군 미필자였다지 않는가. 나는 국정원장도 면제였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기억이 난다- 괜히 헬조선이 아니다. 그런 한심한 현실을 마주한 아들의 푸념에 이렇게 멋있게 아버지로써의 생각을 정리해 얘기해 준다면, 울분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훈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여러 작품집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라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바다의 기별 등. 라면을 끓이며 라는 이 번 작품은 본인의 여러 작품을 주제별로 발췌한 히트곡 모음 같은 작품이다. 김훈의 에세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친절하게도 잘 정리되어있어 여러 권 따로 사볼 필요 없어 좋겠지만, 솔직히 나처럼 계속 읽어 온 사람에게는 중복된 작품이 많아 다소 실망스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의 글은 항상 내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격과 품위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도 그의 진지한 삶에 대한 자세를 배워 나를 원숙하게 다듬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