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글은 소설도 물론 좋지만, 에세이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왜 안그렇겠는가. 아직도 고집스럽게 연필과 지우개로, 본인 표현을 빌자면,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면서 쓰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자와 행 사이에 진지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제목만큼 그렇게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작가의 글은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드러낸다. 그의 글을 보면 특히 그렇다. 매사 삶을 진지하게 대하며 살아가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만이 그에 걸 맞는 글을 뽑아 낼 수 있다. 자업자득이란
세상의 이치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물론 화려한 글재주로 잠깐 본인의 빈약하고 천박한 생각을 잘 포장해
아주 잠깐 인정을 받을 수는 있으나, 대부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김훈의 글은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자주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 많은 글들이 좋지만, 같은 남자로써 깊이 공감하는 몇
개의 글을 고르라면, 밥벌이의 지겨움, 돈1,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을 들겠다. 밥벌이의 지겨움, 돈1은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족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등에 지고, 뒤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가장의 숙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은 대부분 소외된 노동이다. 자본론의 정의를 빌자면 내가 만들어서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르고, 내가 만든 것의 얼마만큼을 가져가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늘 버거운
결과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압박 받으며 노동을 짜내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물러설 수 없는 답답함과
지겨운 현실을 어찌도 이렇게 잘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는 대부분의 잘 나가는 고위 지도층 기득권 층 자식들은 다들 면제를 받는데, 본인은 꽉 채워서 군대를 가야 하는 아들의 푸념과 불만을 마주한 서민 아버지로써의 무기력, 분노를 아주 잘 드러냈다. 나는 외국 은행에서 18년간 근무하면 그 안에서 지금 말하면 금 수저들을 많이 봤는데, 어쩌면
그렇게 덩치 좋고 하루에 서너 번씩 고급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죄다 면제 인지 깜짝 놀랐다. 왜
안그렇겠는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회의 때 국방부 장관 빼고는 다 군 미필자였다지 않는가. 나는 국정원장도 면제였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기억이 난다- 괜히
헬조선이 아니다. 그런 한심한 현실을 마주한 아들의 푸념에 이렇게 멋있게 아버지로써의 생각을 정리해
얘기해 준다면, 울분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훈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여러 작품집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라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아들아
너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바다의 기별 등. 라면을 끓이며
라는 이 번 작품은 본인의 여러 작품을 주제별로 발췌한 히트곡 모음 같은 작품이다. 김훈의 에세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친절하게도 잘 정리되어있어 여러 권 따로 사볼 필요 없어 좋겠지만, 솔직히
나처럼 계속 읽어 온 사람에게는 중복된 작품이 많아 다소 실망스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의 글은 항상 내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격과 품위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도 그의 진지한 삶에 대한 자세를 배워 나를 원숙하게 다듬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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