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조선 말기 선비 윤최식의 시간
사용법 요약한 ‘일용 지결’이라는 책을 풀어 쓰면서 옛 선비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시간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 더해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정통 선비였던 조부를 통해 훈육을 받은 작가의 회상 장면도 적절히 곁들여 있어 사극을 보는 듯한 은은한 재미가 있다.
유학, 선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무능으로 인해 일제에 식민화된 조선 왕조와 오버랩 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현자 예수 그리스도나
부처가 세운 종교에도 이상한 인간들이 아주 많지 않은가. 세월호의 직접 책임자인 유병언도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구원파 교주라는데.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핵심 가르침과
교리를 통해 어떤 사상의 장점을 봐야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추학한 집단을 들어가며
그 사상의 장점마저 부정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의 서문에는, 선비들이 공부와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목적과 이유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말 감동적이고 멋있는 비젼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중고생 과외지도를
하면서 번 돈으로 오디오를 산 적이 있다. 그 때 설치하는 기사 분이 오셨는데, 중년쯤 된 분이고 말씨가 충청 억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 방을 열자마자 잔뜩 어지러진 방 꼴을 보고서는 어찌 대학 공부까지 하는 사람의 방이 이러냐며 무척 놀라워 했다. 당시에는 대학공부와 방 정리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하는 생각을 하며 그냥 한 쪽 귀로 흘러 버리고 말았는데, 세월이 지나며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점차 선명해 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유학의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세대이자 지방 출신인 그 기사 분에게 ‘공부란 자신의 몸을 닦아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길’ 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공부를
할 만큼 한 인간이 어머니가 방 정리를 해주셔야 사람 사는 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참 이해 못할 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참 부끄럽고, 뒤 늦게 나마 그 분의 작은
가르침이 고마워 진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늘 드는 생각이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였다.
성공, 행복, 부를 얻어서 자유를 누리는 것? 이 모든 좋은 이유를 갖다 붙여도 여전히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풀렸다.
독서, 공부를 통해 자신을 끊임 없이 갈고 닦아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나아가도록 힘쓰는
것.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목표였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이유가 될 만하다.
아직도 방바닥에 엎드려 원고지
위에 펜으로 정성스레 글을 써내려 가는 김성동 작가의 찰진 문장을 읽는 것과, 10년간 스님 생활을
해서 그런지 문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성찰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다.
옛 것을 통해 현재의 삶을 빛나게
닦을 수 있다면 고전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고전이라 할 만하다. 일독을 권한다.
정리.
<비롯
하는 글>
l 일용 지결(日 用 指
訣)이라는 책이 있다. 고종 17년인 1880년에 윤최식이라는 선비가 쓴 것으로 일동무 선비들과, 선비가
되려고 막 첫 발짝을 뗀 뒷사람들을 위하여 지은 길라잡이 책이다.
l 이 글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해야 될
일을 적어 놓은 것으로, 하루를 12시각으로 나누어 그때그때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적바림(기록)하였다. 공부하는 사람, 곧 선비들이 지켜야 할 바람직한 일과표 같은 것으로, 조선왕조 뒷녘 실학자들이 파고들었던 공부방법과 그 맥줄(맥락)을 같이한다.
<寅 時, 새벽
3-5시. 먼동이 틀 무렵.>
l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모에게 새벽 문안을 드린다. 그리고 의관을 정제하고 사당에 나아가 배알한다. 그런 다음 서실에 나아가 정좌하고 독서한다. 독서하는 뜻은 반드시
聖人이 될 것을 다짐
둔다.
l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반드시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다짐 두고서 털끝만큼도 스스로를
작게 여겨 물러서거나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 율곡.
l 예전 사람들은
참 꿈이 컸다. 공부를 해서, 그러니까 마음닦달을 하고 몸닦달을
해서 마침내 가 닿아야 될 언덕으로 삼은 것이 성인이었으니… 마침내 가 닿고자 하였던 언덕인 성인은
공자님이었다.
<卯時, 아침
5-7시. 밝은 이치를 살피다.>
물러나 자제들에게 글을 가르치는데, 낯빛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하며
순순히 타이르되 너그럽게 한다. 아침까지는 책을 읽는데, 마음가짐을
맑고 밝게 하여 깊이 파고든다. 글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살펴 읽고 깊이 생각하는 숙독정사熟讀精思방법으로 하고, 사색은 두루 통하는 밝은 이치를찾아가는 明辯融通의 것이어야 한다.
l 그러고 보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종요로운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명상과 독서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l 모든 사상의식과
그 사상의식을 떠받치고 있는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l 세계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저마다 보는 바가 다르겠으되 그 첫 발걸음은 아마도 책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독서.
l 책이야 말로
이 답답하고 힘겹기만 한 누리에서 오직 하나의 등불이었다는 말이다.
l 내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하여금 나를 보게 하여 마침내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하여금 나를 읽게 하는 것이기도 하며, 그러므로 눈으로 기껏 활자나 미좇아 가면 무엇하겠냐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l 독서는 반드시
한 책을 살펴 읽어 참뜻을 다 알고 꿰뚫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 없어진 뒤 다른 책으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l 사람으로
태어나 우주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찌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더구나 글 읽는 자로서 그것을
밝혀내지 못한대서야 글은 읽어 무엇 하겠는가?
l 致知在格物(대학); 격물이라는 것은 사물의 갈피를 하나하나 갈닦아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차츰차츰 앎이 이루어지고, 앎이 이루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마음이 바르게 되면 마침내 修身, 곧 마음 닦달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완전한 인격자 곧 옹근 됨됨이가 되어야 집안도 다스릴 수 있고, 나라도 다스릴 수 있으며, 드디어 나아가서는 하늘 아래 뭇 목숨붙이들을 잘 보살피게 되어, 모두가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辰時, 아침 7-9시; 몸과 마음을 키우다.>
부모에게 나아가 진지를 올린다. 아침밥은 집안사람들과 자리를 나누어 앉아서 먹는데, 음식은 반드시
일매지게 하고 아껴 쓰도록 한다. 물러나서 책을 죽 읽어 보고, 자제들에게는
쓸데 있는 문서 같은 것들을 베껴 쓰게 하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읽은 글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부터 차츰 바빠지는데, 存養省察, 곧 본디 마음을 잃지 아니하도록 잘 돌아본다.
정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참마음이 섬기려는 데 있으면 늘 가라앉을 수 있다.” 하였고, 주자는 “존양한 다음 임한다면 성찰하는 것은 힘들지 않다.” 고 하였다. 예학자 김장생은 그 어버이가 숟가락을 많이 들고 적게
드는 것에 따라 기뻐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였다. 유학자 이대산은 반찬 가짓수를 정하였다.
<巳時, 상오 9-11시; 읽고 또 읽는다.>
아들한테 독서를 시킨다. 그리고 스스로도 곧게 앉아 독서를 하되 外物, 곧 바깥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어쩌다가 손님이 찾아오면 예로써 맞이 한다. 해야
될 일이 있으면 갈피에 맞게 해내고, 손님맞이가 끝났으면 곧 다시 책을 대한다. 손님을 맞을 때는 참마음을 기울여 하고 따뜻한 마음 기울이기를 더할 데 없이 해야 한다. 퇴계는 비록 제자라고 할지라도 먼 길을 떠나려고 하면 반드시 술자리를 베풀어 주고, 뜰 아래로 내려가 배웅하였다. 조헌은 집이 가난하여 몸소 밭갈고
소를 먹이었다. 정충신은 싸움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午時, 낮 11-1시: 때를 놓치지 않는다.>
부모에게 다시 나아가 배알한다. 부리는 사람이 맡은 어떠한지 살핀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덜게 하되, 일을 해내는 것은 때를 놓치지 않게 한다. 황희 정승은 노비 또한 하늘이 낸 백성이므로 어찌 구박할 것인가 하였다.
경서 사서 제자 문집을 읽어
보고 때로는 가까운 집안 사람들이나 벗들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도리에 맞고 인정은 수더분하게 하며, 명분과 갈피에 알맞게 하는 것이다. 이대산은 편지를 한 번도 부랴부랴
쓰지 않았다. 경사지집을 읽는 일은 두루 읽되 요점을 놓쳐서는 안 되며, 문장은 모름지기 뜻이 통하면 넉넉하고 생각에만 기울어서는 안 된다.
<未時, 낮 1-3시; 다시 새벽처럼>
오래도록 앉아서 책을 읽되, 몸과 마음이 고단하면 靜坐 곧 팽댕이를
치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갈고 닦는다. 새벽에 처음 일어났을 때처럼 하면 된다. 조정암은 책을 읽는 겨를에 팽댕이를 치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생각하기를 매우 찬찬히 하였는데, 이는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였다.
때로는 겨를을 즐긴다. 퇴계는 말하기를, 학자가 너무 공부에 빠져들다 보면 마음에 근심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옛 그림을 보거나 꽃나무와 같은 자연의 갖가지 경치를 보고 즐김으로써 공부에 싫증을 느끼지 않게 하고 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하였다. 때로는 예에 대해서 자제들에게 이야기하고, 시를
읊으며, 글씨를 쓰고, 습산 같은 쓸모 있는 재주를 읽히기에
힘쓰되, 유학을 벗어난 이단의 학문에 빠져서는 안 된다.
l “나는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종일 쉬지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공부하다가, 마침내 오랜 병을 얻어 몸뚱이가 시원찮은 사람이 됨을 면하지 못하였다. 학자는
모름지기 자기의 기력을 헤아려 잘 때는 자고 일어날 때는 일어나야 하며, 어느 때 어디에서나 자기의
건강 상태를 잘 살펴야 하며, 이러한 주의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나같이
무리해서 병이 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 퇴계.
<申時, 하오 3-5시; 몸과 마음이 하나
되다.>
천천히 글의 맛을 읽되 넉넉한
마음을 지니도록 한다. 주자는 이것을 약을 다리는 일에 비추어 보았다.
몸 갈무리에 마음을 두어 병이 나지 않도록 한다. 양생서에 이르기를, 가려야 할 것은 저녁에 많이 먹는 것이라 하였다. 고경명은 저녁밥을
담소하게 하였고, 술은 陶然할 만큼만
하였다. 이때 정신은 때로 묵상하면서 옛 성현의 기상을 본받고자 하여야 한다. 퇴계께서 말씀하되 “성현의 도통을 이어받고 후학을 계발시키니, 유학의 도는 우리땅에 있도다.” 하였다.
<酉時, 저녁 5-7시>
집안 사람들에게 그날 맡았던
일들에 대해 물어본다. 자제들에게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바에 대해서 말하게 하고, 그것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한다. 이대산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 반드시
의심나는 곳을 묻게 한 다음, 그 뜻을 풀이하였다.
이때는 집안 법도를 바로 한다. 이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바로 한 다음에 은혜를 두터이 하는 것이니, 은혜와
덕의를 말한다. 퇴계는 내외는 인륜의 비롯됨이고 만복의 밑뿌리로서 비록 더없이 스스럼없다고 하여도 더없이
삼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율곡은 예도를 어기지 아니하여야 집안에 법도가 바로 선다고 하였다.
l 최근에 명상 신드롬이 휩쓸고 있으니,
명상은 직관을 얻기 위해서이다. 직관은 걸림이 없다. 해와
달이 만나고 거울과 거울이 만나며 빛과 빛이 서로 만나듯이 그 가운데를 막는 아무런 걸림이 없는 것이다.
l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물며 예술이겠는가? 외로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 길밖에 길이 없다.
<戌時, 저녁 7-9시; 하루의 갈무리>
등불을 밝히고 일기나 치부책을
갈무리한다. 퇴계의 일기에는 날씨, 강습, 강론 등이 꼼꼼히 적바림되어 있다.
자제로 하여금 낮의 공부에 대하여
다시 익히게 한다. 퇴계는 낮에 배운 것을 밥에 거듭 익히면 바야흐로 얻음이 있다고 하였다. 독서가 끝나면 고요히 우주와 인생에 대한 샘자리에 대하여 생각하고 게으르거나 거친 행동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돌이켜 살핀다. 정여창은 일찍이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미일 밤 홀로 깊은 생각을 하였다. 이때 하루 일은 비록 끝낸 것일지라도 반드시 다시 생각해 내는데, 살아가는
몸가짐도 모름지기 먼저 의로운 일을 하고 난 뒤에라야 일의 보람을 얻는 것이다. 이대산은 임금을 곁부축할
만한 바탕을 타고났지만 벼슬과 명리를 멀리하고 오직 나라를 근심하는 데 마음을 다하였다.
<亥時, 밤9-11시; 발자취는 끊어지고>
눈을 감고 걱정 없이 잔다. 양생서에 이르기를 二更, 그러니까 밤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타고난 기운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어쩌다
밖에서 갑작스럽게 부르는 소리가 나면 천천히 일어나서 대꾸한다. 이대산이 이르기를 사람이 엉겁결에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병을 얻기 쉬우니 몸과 마음이 가라앉지 못한 까닭이라 하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부딪치면 그
사람의 속힘을 알아볼 수 있다. 속힘이란 여느 때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고 기운이 꿋꿋한 것이다. 정포은이(정몽주)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바람과 물결이 거세어 모두 다 정신을 가누지 못하였는데 오직 그만은 정신을 맑고 밝게 하고 팔짱을 늠름하게 끼고 있어서 마치 방
안에 있는 듯 하였다.
<子時, 밤11-1시; 깊은 밤을 지나며>
깊은 잠에 든다. 이때 밤기운으로써 몸과 마음을 갈무리한다. 윤근천이 이르되 사람의
잠이라는 것은 심혈, 곧 온 힘이 간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마음이
걱정 없으면 잠 또한 걱정 없다고 하였다.
어쩌다 잠을 자더라도 妄語, 곧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공부의 깊고 얕음은 그 사람의 꿈자리로써 살필
수 있다. 정자는 마음이 가라앉지 못하면 꿈자리가 사납다고 하였으며,
고경명은 꿈에서도 흔들림 없이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학문과 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丑時, 새벽 1-3시; 새로운 날>
첫 닭이 울면 깨어나서 정신을
거두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어쩌다가 경전의 義理, 곧 올바른 뜻에 대하여 새롭게 얻은 바가 있다면, 疾書한다. 남명은 학자의 새벽
공부는 이때가 가장 좋다고 하였고, 퇴계도 새벽에 깊고 썩 종요로운 깨우침이 많았다고 하였다. 질서하는 버릇은 류반계, 이성호,
이대산이 그러하였다. 이때 앎과 생각을 일으켜야 나날이 새롭게 되는 보람을 얻을 수 있다.
l 책을 읽으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하나같이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말고 오로지 책만 읽으라고 한다. 그러면 그 속에 다 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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