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3일 수요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임순례 감독


언제나 내게 흐뭇한 미소를 안기는 영화가 있다면 그 중 단연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꼽겠다. 낯 설고 정말 평범하게 생긴 배우들이 진솔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고, 성공한 자들과 조폭에게 이미 장악 당한 한국 영화의 진부한 소재 속에서 도드라지는 밤무대 밴드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장면들은 애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이 번에는 여자 핸드볼이라는 역시 자세히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나타났다.
8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하키 그리고 양궁은 그냥 메달을 따와야 하는 종목으로 생각 했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이건 상식적으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기적과도 같은 현실임을 알 수 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포함 3연패를 달성한 덴마크는 여자 핸드볼 프로팀만 30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실업팀만 달랑 5개. 억대 연봉에 훌륭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춘 호화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건장한 서양 선수들 사이에서 작고 약한 한국 여자 선수들이 오로지 투혼 하나로 이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줘 온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 중 몇몇은 팀이 해체 되는 바람에, 생계를 위해 운동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던 중에 소집되어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유럽에서 벌어진 경기라 심판들의 일방적인 판정,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 체격과 힘의 차이 에서 오는 불리함 속에서도 이들은 2차 연장전까지 무승부로 가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2차 연장전에 다리가 풀려서 발목이 꺾이는 선수도 간혹 보인 걸로 봐서 진정 모든 것을 소진한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 였을까라는 나의 중요한 하나의 화두에 대한 실마리를 몸소 보여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TV가 없어서 스포츠 경기는 전혀 안보지만 오늘 부로 나는 여자 핸드볼 팬이 되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내 가슴에 깊은 여운으로 울린다

2008년 1월 16일 수요일

고맙다. 과연 일규야.

일규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시 친했던 아이다.
잠시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친구랑 나랑 짝을 한적도 없었고, 나와 별로 공통점이 없었고, 지속적인 친분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결국 어느 중학교를 갔는지도 모를 만큼 이후 교류가 이어지지 못했지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2년이 지난 지금 왜 자꾸 일규가 생각이 날까.

사춘기가 일찍 왔는지, 선생의 자질이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첨엔 후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둘 다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담임 선생님 한테 게기다가 벌을 많이 받았던 나는 그 시기에 갖은 청소 당번을 도맡아서 했다.
화장실 청소는 물론, 현관 청소, 복도 청소, 화단 청소, 휴지통 비우기...
학업성적이 그리 나쁘지도 않은 편이 었는데, 벌을 무지 많이 받았고 그 벌의 횟수 만큼이나 나의 선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과 저항은 커져만 갔던 거 같다.
일규는 그때 그런 당번 과정에서 주로 같이 했던 아이다.
화장실 청소, 휴지통 비우기, 복도 청소 이런데 대 여섯 명의 아이가 동원되면 거기에 늘 일규가 있었다.
게는 주로 숙제를 안해서 걸리는 꽈였고, 나는 주로 말대답과 저항으로 걸리는 꽈였었는데 암튼 벌칙을 같이 받는다는 건 같았다.
일규는 숙제를 안하는 것 빼놓고는 순수하고 순한 아이 였다.
물론 초등학교 육학년이 순수하지 않은 애가 얼마나 있었겠냐 마는, 적어도 당시에 내 눈에 비치는 일규는 그랬다.
옷 차림이나 이런 걸 보면 집안이 무척 어려웠던 것 같은데, 어쩌다 용돈이라도 타게 되면 나를 학교 앞 떡볶기 집에 불러서 사줄 정도 로 마음만은 넉넉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느끼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도 배풀줄 아는 사람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당시에 우리집안은 아버지가 크게 사기를 당한후 직업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예전에 조금 살았을 때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생계와 바꾸던 시기였다.
전축을 팔았고, 카메라를 팔았고, 시계들을 팔았고,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이나 값을 쳐주는 것들은 거의다 팔았다.
유일하게 내게 남은것은 여자용으로 나온 것을 줄여서 어머니가 내게 주신 작은 시계 였는데, 나는 그게 잠시 행복했던 시절과의 끈이라고 여기며 무지 아꼈던거 같다.
평소에 장난도 별로 없고, 순하기만 한 일규가 어느날 복도로 지나던 나의 다리를 걸었다. 물론 또래 아이의 흔하디 흔한 장난이었는데, 타이밍이 아주 않좋았다.
당시에 손을 씻고 시계를 들고 있던 내게는 무척 큰 일이었다. 넘어 지면서 손을 짚으려고 손을 폄과 동시에 그 시계가 날아가면서 박살이 난 것이다.
그 때 난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소중한 것이 없어졌다는 서운함만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일규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몰려왔다.
미안해서 고개를 숙인 그 애를 참 모질게 때려준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모질도록.
그 후에 며칠 일규가 밥을 먹을때 턱을 어루만지며 힘들어 했던게 기억이 난다. 턱 어딘가를 맞았던 모양이다.
그 후 우리 사이는 서먹서먹 멀어졌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일규와 별로 좋지 않았던 그 시기의 기억을 묻고 살았다.

그런데 희안했다.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땐 지난 영화의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 듯, 일규의 얼굴이 떠올랐고 일규가 밥을 먹으며 아픈 턱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일규가 사주던 떡볶기의 맛이 떠올랐고, 일규가 꼬깃꼬깃 꺼내던 때묻은 오백원 짜리 지폐(예전에 오백원짜리 지폐가 있었다)와 그 애의 넉넉한 미소도 생각났다.
내가 살아가면서 심하게 이기적으로 변질되거나 남에게 모질게 대하는 순간에, 혹은 내가 입은 피해로 인해 타인에 대한 분노 속에서 떨고 있을때 일규가 무슨 말을 할 것 같다. 그 눈꼬리 쳐진 순한 눈매로. 넌 내게 그렇게 했지만 난 너를 용서하지 않았니.

어떤 소설의 제목 속에서 일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비로서 찾았다.

고맙다. 과연 일규야.

2008년 1월 15일 화요일

How to make money in stocks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 – 윌리엄 오닐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나고 텍사스에서 자란 시골 청년 윌리엄 오닐이 증권가에 입문, 위대한 스승( guru)으로 성장한 후 들려주는 투자에 대한 지침서이다.
오닐이 증권회사 직원 시절 드레퓌스 펀드가 보이는 경이적인 실적에 감명 받아, 그 펀드에 편입된 종목 100개를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 그 공통점을 끄집어내 법칙화 한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들이다.
7가지 투자 원칙을 이니셜만 따서 CAN SLIM기법이라고 명명하고 이 방법론을 그 후 더욱 더 갈고 닦아 명료하면서도 실전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 해놓았다.
다음은 CAN SLIM기법에 대한 요약이다.

Current quarterly earnings per share ; 현재의 주당 분기 순이익 – 최소한 18~20% 증가하고 있어야 한다. 높을 수록 좋다. 분기 매출액 증가율도 25%는 되어야 한다.
Annual earnings increase; 연간 순이익 증가율 – 최근 3년간 매년 놀라운 성장율을 기록했고, 자기자본 이익율도 17% 이상이어야 한다.
New products, new management, new high ; 신제품, 경영혁신, 신고가 –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낸 회사, 경영혁신을 이룬 회사, 해당 업종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회사, 좋은 주가 패턴과 함께 신고가를 경신한 주식을 주목하라.
Supply and demand; 수요와 공급 (발행 주식수와 높은수요) – CAN SLIM의 다른 원칙들을 충족시킨다면 자본금 규모가 얼마든 상관없다. 하지만 바닥권을 탈출해 비상하기 시작하는 주식이라면 거래량이 큰 폭으로 증가해야 한다.
Leader or laggard ; 주도주인가 소외주인가 – 시장 주도주를 사고, 소외주는 피하라. 그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 주식을 사라. 주도주는 통상적으로 상대적 주가 강도(RSI) 수준이 80~90 이상이다.
Institutional sponsorship ; 기관의 뒷 받침 – 기관 투자가들의 매수가 늘어나는 주식, 최근 운용 실적이 최상위에 랭크된 기관 투자가 가운데 적어도 한 두 곳이 매수하는 주식을 사야한다. 경영진이 자기 회사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종목도 주목하라.
Market direction ; 시장의 방향 – 매일 매일의 주요 지수와 거래량의 변화, 주도주의 움직임을 통해 시장 전반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큰 이익을 거두느냐 손실을 보느냐는 여기서 결정된다.

그의 원칙이 주는 실제적인 도움을 차지하고라도 그의 삶과 투자철학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시장에서 주도주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3년 여간 시장 데이터들을 모아서 분석한 그 끊임없는 학구열과 배움의 태도가 나를 숙연하게 한다. 대충 경제 신문과 경제 지표들 죽 흝어 읽어 보고는 연구를 다했다고 넋두리하고 손실이 났을 때 푸념하듯 술이나 마시는 나태함으로는 결코 시장이 들려주는 화음을 분별해서 들을 귀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 늘 배우고, 새로운 움직임이 관찰 되면 기록하고 연구해서 법칙화 하는 태도도 배울만 하다. 오닐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노트르담 대학 미식 축구팀의 전설적인 로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 네 약점이 강점이 될 때까지 단련하라” 이다. 작은 실패와 어려움에 쉽게 힘들어하던 내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을 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연구와 노력을 통해 자신을 진화 시키고, 실패를 통해 결점을 수정하면서 길을 걸어 나아가는 것.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2008년 1월 9일 수요일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 레프 톨스토이


내가 톨스토이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톨스토이 단편집을 통해서였다.
그 중에 특히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감동’이 아닌 ‘재미’로 읽었다. 그냥 술술 읽혀지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단단한 내용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어린 나이였지만 어렴풋이 느껴졌었다.
그 후로 톨스토이를 잊고 살다가 4년 전에 톨스토이 단편선을 어른의 눈으로 읽은 데 이어 이 번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덥석 사버린 이유는 – 사실 나는 책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구매를 하기 때문에, 이런 충동적인 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다 – 그가 작고하기 직전에 남긴 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람은 죽기 전에 거짓말 하지 않는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움켜쥐는 대신 풀어 놓고 나누고 싶어진다. 내가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시한부 환자들의 고백을 담은 ‘인생 수업’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읽었다.
톨스토이는 단지 문학적 재능만이 뛰어난 작가는 아니다. 늘 농민과 가난한 이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는데 청년 못지않은 정열과 활동성을 작고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은 40대 이전에 이미 완성된 것들이다. 그는 그 이후로 소설쓰기를 중단하고 사색과 명상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육을 위한 저술에 남은 80생까지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런 그가 쓴 글이라서 그런지, 되도록 책에 밑줄을 삼가고 읽는 습관을 가진 나지만 이 책만큼은 밑 줄 투성이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도저히 한 단어도 버릴 수 없는 주옥 같은 가르침들. 맑은 삶과 깊은 사색이 만들어 내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한 장 넘길 때마다 매료되고 말았다.

내가 감동 받은 구절들을 직접 인용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대신한다.

‘…진정한 스승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타인 또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잘 못 말하는 것을 후회하는 적은 많다. 하지만 침묵하는 것을 후회하는 경우는 없다. 더 많이 말하고 싶어 할수록,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릴 위험은 커진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30분 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죽음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늘 기쁨 속에 살면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형제를 (타인을) 미워하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똑 같은 영혼이 자리잡고 있다. 진정한 `나’는 혼자가 아닌 모든 생명체에서 찾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모두에게 같은 영혼이 있음을 기억하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살았는가이다.’
*참고- 톨스토이의 인생 10훈.
- 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성공의 대가이다.
- 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능력의 근원이다.
- 운동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비결이다.
- 독서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지혜의 원천이다.
- 친절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 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대망을 품는 일이다.
-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이다.
- 주위를 살펴보는데 시간을 내라. 이기적으로 살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 웃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다.
-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인생의 영원한 투자이다.

2008년 1월 8일 화요일

(스크랩) 정호승 - 땅위의 직업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강원도 탄광 마을인 고한에 사는 한 평범한 광원으로 내가 잡지사 기자 시절에 단 한 번 취재를 위해 만났던 김장순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검은 탄가루나 버력들이 무더기로 쌓인 산중턱 어느 허름한 블록집에 살고 있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도 살기 힘들 때마다 문득 그가 떠오르는 것은 그가 나에게 준 남다른 교훈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땅 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김장순 씨는 경북 안동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협빚을 갚지 못해 빚잔치를 하고 탄광촌으로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 농부들의 전형적인 얼굴, 순박하고 순연한, 마치 봄날의 따스한 밭흙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으로, 나는 그가 일하고 있는 광업소 소장의 허락을 받아 지하 막장까지 그를 따라가본 적이 있다.

먼저 탈의실에 들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헤드램프가 달린 헬멧을 쓴뒤 작업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00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200미터까지 가서 다시 갱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미로와 같은 갱 속은 춥고 어두웠다. 지하 사무실에서 막장으로 가는 지도를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갱 양편으로는 탄가루가 섞인 검은 지하수가 급히 흘러갔다.
갱 바닥은 탄가루와 뒤범벅이 돼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나는 오직 헬멧에 부착된 희미한 불빛만 의지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 30여분쯤 걸어갔을까. 더이상 갱도가 없는 곳이 나타나고, 갱벽 한가운데를 비스듬히 위로 뚫은 새로운 갱도가 하나 나왔다. 두세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갱 속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들어가자 그곳이 바로 지하 막장이었다.

광원들은 좌우로 버팀목을 세우며 안으로 안으로 파들어가고 있었다. 김장순 씨가 한 번씩 곡괭이로 내리찍을 때마다 탄덩이가 떨어져 나왔고, 떨어져 쌓인 탄덩이는 경사진 배출구를 통해 갱도 밖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김장순 씨를 지켜보면서 막장에 널브러져 있는 버팀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막장 안은 지열 때문에 몹시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없는 땅속 저 깊은 곳, 어딘지 모르는 한 지점에 작은 한마리 벌레처럼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막장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합니더. 담배도 못피우게 하지예.
그런데 어떤 때는 앉은 채로 깜빡 졸 때도 있습니더."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중간중간에 한마디씩 던지는 김장순 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나로서는 너무나 건방지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김장순 씨가 막장을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다시 갱속 지하 사무실로 가 그곳에 보관해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둠 속에서 손도 씻지 않고 작업복도 입은 채였다.

"드이소. 우린 맨날 여기서 이렇게 점심을 먹습니더.
그래도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아닙니꺼."

그의 아내가 내 몫으로 싸준 도시락을 건네주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꽁보리밥이었다. 어릴 때 외갓집에 가서 먹어본 이후 단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꽁보리밥이었다. 밥은 껄끄러워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탄가루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탄가루를 먹는다는 생각에 통 젓가락질을 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김장순 씨는 그렇지 않았다. 반찬도 김치와 통자반뿐인데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는 듯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가 너무 밥을 빨리 먹는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고향에 있던 막내동생까지 고한에 불러들여 3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 막내동생 장가 보낼 일이 걱정이며, 광원으로 일하면서 그래도 두 아들 녀석 학비가 안 들어서 좋다는 이야기, 그를 탄광촌으로 내몬 고향의 농협빚은 이제 다 갚았으며, 한두 해만 더 일하면 어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젖소 몇마리라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등은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아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때 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그의 소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 끝에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릅니더."

나는 몇 점 꽁보리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그만 이 말을 듣고는 목이 꽉 메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화들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땅 위의 직업' 갖기를 소원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말은 하나의 커다란 깨우침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그의 말을 단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그를 생각하고, 땅 위의 직업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위안받는다

2008년 1월 3일 목요일

7일간 용맹 철야정진 후기.


연초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무모하게 휴가를 내고 한 사찰에서 일주일간 철야 정진에 참가 했다.
회사에서 물론 개념 없는 인간으로 찍힐 위험성이 있었지만, 어떻게 사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줄도 모르고 인생을 하루하루 흘려 보내는 위험성이 내게는 더 크게 느껴져서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7일 용맹정진의 기원은 석가모니 부처가 6년간의 고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7일간 밤낮을 깊은 삼매에 빠진 후 마지막 날 새벽 별을 보고 견성 (깨달음을 얻음) 했다는 데서 시작 된 것으로, 스님들이 동안거 하안거 3개월을 마치는 마지막 주에 하는 수행 과정이다.
완전 안자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니까 꾸벅꾸벅 졸기는 하는데, 7일간 눕지 않고 벽에 등을 대지 않으며 오로지 서 있거나 앉거나 두 가지 자세만 취해야 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육체가 전부인줄 알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뚱이 에게 항복을 받는 과정이라고 이 수행을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처음엔 두려움과 의심도 많이 생겼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 과연 잠 안자고 이렇게 하는 짓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금 자고 오히려 집중해서 명상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사실 몰래 첫째 둘째 날은 각각 한 시간, 서너 시간을 숨어서 잤다. 그러나 그런 타협 속에서는 아무 것도 거둘 수 없다는 단호한 선원장님의 일갈에 나머지 5일은 완전히 밤샘 수행에 정진했다.
반 가부좌가 보기엔 쉬워 보여도 이게 두어 시간 지속되면 가랑이와 각 관절 그리고 허리를 끊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온다. 다리 모양을 아무리 바꾸어도 몸의 하중을 받아내는 무게 중심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제어하기 힘들다. 왜 앉거나 서있는 자세만 허용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이 두 자세로는 사람이 깊은 졸음 이상의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원래 눈을 감고 명상에 들려고 하면 수많은 망상과 상념이 수 천 편의 영화를 최고 볼륨을 틀어놓고 감상하는 것 보다 심하게 머리 속을 울린다. 뿌리 치면 뿌리치려 할수록 이것은 더 심하게 다가든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민은 늘 있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고통은 홀로 자신을 대할 때 극에 달한다. 유명한 부호와 인사들이 쉽게 마약을 비롯한 중독에 빠지는 것도 이런 고통과 번뇌가 얼마나 사람의 지위와 부에 상관없이 개인을 압박하는지 알 수 있다.
졸음과 잠시도 몸을 떠나지 않고 휘감아 오는 통증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이런 정신적인 번뇌와 망상들이 잠시 나마 사라 지는 순간에 대한 체험과 환희였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의 지혜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벗어 나는 순간 쏟아지기 시작한다. 간디 김구 테레사 수녀, 가까이는 문국현까지. 이들이 몸소 삶을 통해 보여주었던 지혜로움과 감동의 실천들이 나온 바탕에는 육체와 소유에 대한 집착을 큰 뜻을 위해 기꺼이 놓아 버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기 위해서 이 번 철야 수행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쉽게 7일이 흘렀지만 세상은 늘 그전과 같았다는 것에, 또한 부처님의 견성처럼 “짠”하고 나타나는 디지털 식 깨달음을 기대했던 내 자신에게 픽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러나 100도를 넘어서 물이 기체가 되는데 50도 60도 70도의 점진적인 상승 과정이 필요하듯이 이 번 수행이 나에게 그런 과정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 이었기를 바랄 뿐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늘 가져왔던 두 가지 궁금증에 한 발 더 나아가는 게기가 되었기를 기원해 본다.

새 해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이의 실현을 위해 각자의 생업에 몰두하면서도 길을 함께 가는 주변의 친한 벗들에게 뒤 늦게 나마 인사를 대신해서 이 글을 올린다.
부디 올 한해도 나의 본래 의미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뜻 깊은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윤석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