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3일 목요일

7일간 용맹 철야정진 후기.


연초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무모하게 휴가를 내고 한 사찰에서 일주일간 철야 정진에 참가 했다.
회사에서 물론 개념 없는 인간으로 찍힐 위험성이 있었지만, 어떻게 사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줄도 모르고 인생을 하루하루 흘려 보내는 위험성이 내게는 더 크게 느껴져서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7일 용맹정진의 기원은 석가모니 부처가 6년간의 고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7일간 밤낮을 깊은 삼매에 빠진 후 마지막 날 새벽 별을 보고 견성 (깨달음을 얻음) 했다는 데서 시작 된 것으로, 스님들이 동안거 하안거 3개월을 마치는 마지막 주에 하는 수행 과정이다.
완전 안자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니까 꾸벅꾸벅 졸기는 하는데, 7일간 눕지 않고 벽에 등을 대지 않으며 오로지 서 있거나 앉거나 두 가지 자세만 취해야 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육체가 전부인줄 알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뚱이 에게 항복을 받는 과정이라고 이 수행을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처음엔 두려움과 의심도 많이 생겼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 과연 잠 안자고 이렇게 하는 짓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금 자고 오히려 집중해서 명상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사실 몰래 첫째 둘째 날은 각각 한 시간, 서너 시간을 숨어서 잤다. 그러나 그런 타협 속에서는 아무 것도 거둘 수 없다는 단호한 선원장님의 일갈에 나머지 5일은 완전히 밤샘 수행에 정진했다.
반 가부좌가 보기엔 쉬워 보여도 이게 두어 시간 지속되면 가랑이와 각 관절 그리고 허리를 끊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온다. 다리 모양을 아무리 바꾸어도 몸의 하중을 받아내는 무게 중심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제어하기 힘들다. 왜 앉거나 서있는 자세만 허용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이 두 자세로는 사람이 깊은 졸음 이상의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원래 눈을 감고 명상에 들려고 하면 수많은 망상과 상념이 수 천 편의 영화를 최고 볼륨을 틀어놓고 감상하는 것 보다 심하게 머리 속을 울린다. 뿌리 치면 뿌리치려 할수록 이것은 더 심하게 다가든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민은 늘 있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고통은 홀로 자신을 대할 때 극에 달한다. 유명한 부호와 인사들이 쉽게 마약을 비롯한 중독에 빠지는 것도 이런 고통과 번뇌가 얼마나 사람의 지위와 부에 상관없이 개인을 압박하는지 알 수 있다.
졸음과 잠시도 몸을 떠나지 않고 휘감아 오는 통증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이런 정신적인 번뇌와 망상들이 잠시 나마 사라 지는 순간에 대한 체험과 환희였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의 지혜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벗어 나는 순간 쏟아지기 시작한다. 간디 김구 테레사 수녀, 가까이는 문국현까지. 이들이 몸소 삶을 통해 보여주었던 지혜로움과 감동의 실천들이 나온 바탕에는 육체와 소유에 대한 집착을 큰 뜻을 위해 기꺼이 놓아 버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기 위해서 이 번 철야 수행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쉽게 7일이 흘렀지만 세상은 늘 그전과 같았다는 것에, 또한 부처님의 견성처럼 “짠”하고 나타나는 디지털 식 깨달음을 기대했던 내 자신에게 픽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러나 100도를 넘어서 물이 기체가 되는데 50도 60도 70도의 점진적인 상승 과정이 필요하듯이 이 번 수행이 나에게 그런 과정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 이었기를 바랄 뿐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늘 가져왔던 두 가지 궁금증에 한 발 더 나아가는 게기가 되었기를 기원해 본다.

새 해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이의 실현을 위해 각자의 생업에 몰두하면서도 길을 함께 가는 주변의 친한 벗들에게 뒤 늦게 나마 인사를 대신해서 이 글을 올린다.
부디 올 한해도 나의 본래 의미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뜻 깊은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윤석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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