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6일 수요일

고맙다. 과연 일규야.

일규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시 친했던 아이다.
잠시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친구랑 나랑 짝을 한적도 없었고, 나와 별로 공통점이 없었고, 지속적인 친분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결국 어느 중학교를 갔는지도 모를 만큼 이후 교류가 이어지지 못했지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2년이 지난 지금 왜 자꾸 일규가 생각이 날까.

사춘기가 일찍 왔는지, 선생의 자질이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첨엔 후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둘 다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담임 선생님 한테 게기다가 벌을 많이 받았던 나는 그 시기에 갖은 청소 당번을 도맡아서 했다.
화장실 청소는 물론, 현관 청소, 복도 청소, 화단 청소, 휴지통 비우기...
학업성적이 그리 나쁘지도 않은 편이 었는데, 벌을 무지 많이 받았고 그 벌의 횟수 만큼이나 나의 선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과 저항은 커져만 갔던 거 같다.
일규는 그때 그런 당번 과정에서 주로 같이 했던 아이다.
화장실 청소, 휴지통 비우기, 복도 청소 이런데 대 여섯 명의 아이가 동원되면 거기에 늘 일규가 있었다.
게는 주로 숙제를 안해서 걸리는 꽈였고, 나는 주로 말대답과 저항으로 걸리는 꽈였었는데 암튼 벌칙을 같이 받는다는 건 같았다.
일규는 숙제를 안하는 것 빼놓고는 순수하고 순한 아이 였다.
물론 초등학교 육학년이 순수하지 않은 애가 얼마나 있었겠냐 마는, 적어도 당시에 내 눈에 비치는 일규는 그랬다.
옷 차림이나 이런 걸 보면 집안이 무척 어려웠던 것 같은데, 어쩌다 용돈이라도 타게 되면 나를 학교 앞 떡볶기 집에 불러서 사줄 정도 로 마음만은 넉넉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느끼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도 배풀줄 아는 사람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당시에 우리집안은 아버지가 크게 사기를 당한후 직업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예전에 조금 살았을 때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생계와 바꾸던 시기였다.
전축을 팔았고, 카메라를 팔았고, 시계들을 팔았고,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이나 값을 쳐주는 것들은 거의다 팔았다.
유일하게 내게 남은것은 여자용으로 나온 것을 줄여서 어머니가 내게 주신 작은 시계 였는데, 나는 그게 잠시 행복했던 시절과의 끈이라고 여기며 무지 아꼈던거 같다.
평소에 장난도 별로 없고, 순하기만 한 일규가 어느날 복도로 지나던 나의 다리를 걸었다. 물론 또래 아이의 흔하디 흔한 장난이었는데, 타이밍이 아주 않좋았다.
당시에 손을 씻고 시계를 들고 있던 내게는 무척 큰 일이었다. 넘어 지면서 손을 짚으려고 손을 폄과 동시에 그 시계가 날아가면서 박살이 난 것이다.
그 때 난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소중한 것이 없어졌다는 서운함만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일규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가 몰려왔다.
미안해서 고개를 숙인 그 애를 참 모질게 때려준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모질도록.
그 후에 며칠 일규가 밥을 먹을때 턱을 어루만지며 힘들어 했던게 기억이 난다. 턱 어딘가를 맞았던 모양이다.
그 후 우리 사이는 서먹서먹 멀어졌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일규와 별로 좋지 않았던 그 시기의 기억을 묻고 살았다.

그런데 희안했다.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땐 지난 영화의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 듯, 일규의 얼굴이 떠올랐고 일규가 밥을 먹으며 아픈 턱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일규가 사주던 떡볶기의 맛이 떠올랐고, 일규가 꼬깃꼬깃 꺼내던 때묻은 오백원 짜리 지폐(예전에 오백원짜리 지폐가 있었다)와 그 애의 넉넉한 미소도 생각났다.
내가 살아가면서 심하게 이기적으로 변질되거나 남에게 모질게 대하는 순간에, 혹은 내가 입은 피해로 인해 타인에 대한 분노 속에서 떨고 있을때 일규가 무슨 말을 할 것 같다. 그 눈꼬리 쳐진 순한 눈매로. 넌 내게 그렇게 했지만 난 너를 용서하지 않았니.

어떤 소설의 제목 속에서 일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비로서 찾았다.

고맙다. 과연 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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