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힘든 시기와 시련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내게는 힘이
주는 책들이 있었다. 요즈음에 나름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참에,
나를 지탱할 힘을 얻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한, 중, 일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많은 저작을 저술한 작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자로 최대 저작을 한 작가가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저작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도 인정받는 것이
다산의 저작이다.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치민이 유언으로 무덤 속에 넣어달라고 했다는 서적이
목민심서라고 전해진다.
이상하게도 걸작들은 인간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시련들 속에서 탄생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남자로써는 사형선고보다 치욕스러운 궁형(거세형)을 딛고 탄생했듯이,
다산의 주요 3부작을 비롯한 대부분의 저작들은 남인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진 신유박해(1801년) 이후 18년의
강진 유배기간 중에 탄생했다.
40 초반의 사내에게 20대 초반에 잠시 믿었던
천주교를 고리로 해서 18년을 유배 보낸 조선의 못 된 패거리 정치 농간이 한 시대를 이끌 거대한 인물을
시골 구석에 처박는 만행을 저질렀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이렇게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한승원 작가는 13년간 귀향하여 자산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우리 말로 단순히 글을 썼다라는 표현으로는 아쉽고, ‘글을 빚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그 만큼 이
책에는 다산의 철학, 인생관, 종교관 세계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 볼 수 있다. 이 책을 세 번째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른 것은 이 책의 깊이가 그 만큼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을 때처럼, 내가 한국어를 잘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주는 대작이다.
이 책에서는 정적들로 가득 차있고, 눈 밝은 지식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절망 밖에 없어 보이는
조선 말기의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왜 좌절하지 않고 주옥 같은 글들을 다산이 쏟아 냈는지 그 이유들이
나온다.
그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선비는 사업으로 깨달음을 완성한다’라는
중심 사상으로 인해서 이다. 다산은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하는 실학 사상의 선구자중 하나지만 본분은 유학자이다. 여기서 사업이란 ‘세상을 좋고 이롭게 바꾸는 학문적인 노력’이라고 유학에서 정의하는데, 눈 밝은 지식인인 다산이 그런 본분을
잊지 않았기에 인해 혼탁한 시기에서 글 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혼탁함을 도덕적으로 옳고
바른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강직한 열정이 그런 다작을 이끈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깨달은 선비는
하늘에서 천명을 받았기에 그런 올곧은 사업을 시행해야 하는데, 다산은 천주교 사상에도 깊이 영향 받은
까닭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소명으로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이해한 것이다.
하루하루 그저 별 이유와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내게 밝은 등대와도 같은 뚜렷한 길을 제시해주는 다산이 있어 내가 곧추 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책은 그런 다산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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